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사건 (문단 편집) == 사건 정황 == [youtube(mYCngGKPZSY)] 당시 [[아키하바라]]는 휴일이었고 보행자 천국 이벤트(歩行者天国)[* 한국의 '차 없는 거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운 휴일의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 12시 35분경 츄오도리(中央通り 중앙거리)에서 [[이스즈 엘프|2톤 트럭]]이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5명을 그대로 덮쳤다.[* 이로 인해 후지노 카즈노리, 카와구치 타카히로, 나카무라 카츠히로가 심하게 다쳐 사망하였다.] 트럭 운전자는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로 돌진해서 부딪친 후 차에서 내렸다. 경찰관과 행인들은 [[2016년 니스 테러|처음엔 단순 교통사고인 줄 알았고]]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러 근처로 다가왔다. 이 때 범인은 준비해 둔 단검을 빼들어선 괴성을 마구 질러대며 눈 앞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코이와 카즈히로, 미야모토 나오키, 미츠이 미츠루는 [[척살]]당해 [[쇼크(의학)#s-5.1|과다출혈로 인해 쇼크사]]했다.] 테러범은 출동한 경찰관 오기노 히사시(荻野 尚)에 의해 붙잡혔다. 오기노는 맨 처음엔 진압봉으로 대응하다가 범인의 칼에 찔렸지만 [[방검복]]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았고 이후 [[권총]]을 뽑아서 겨누자 범인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단검을 버리며 투항했다. 이는 불과 10여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초 피해자 무토 마이는 교통사고라고 생각해서 도와주러 갔다가 살해당했고 거리에서 [[메이드]] 복장으로 [[아르바이트]] 중이던 여성, [[핸드폰]] 가판대 아르바이트 등 근처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 또한 변을 당했다. 범인은 당시 25세였던 [[아오모리현]] 출신 카토 토모히로(加藤智大)로, [[기후현]]의 단기대학을 졸업한 후 경비원·자동차 [[공장]], 주택자재회사의 비정규직 직원, 트럭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며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사건 당시 사용한 트럭 또한 도요타의 하청 공장인 간토자동차공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중 렌트한 트럭이었다. 범인은 등산용 나이프 외 5개의 나이프를 더 소지하고 있었는데 사건 이틀 전 밀리터리 수입잡화점에서 구입한 걸로 밝혀졌다. 사건 자체는 2005년 [[센다이]]에서 일어난 트럭 폭주 사건에서 범행에 트럭이 이용된 점, 그리고 이 사건 이전에 있었던 [[가나가와 마사히로]]가 츠치우라 연속살상사건(土浦連続 殺傷事件)을 저지르면서 트럭과 나이프를 이용한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범인은 2ch(현 [[5ch]])에 1,000건이 넘는 게시물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는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게 되자 결국 6월 8일 새벽 5시 21분에 "아키하바라에서 사람을 죽일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차로 사람들을 치고, 차를 쓸 수 없게 되면 나이프를 사용할 겁니다. 모두 안녕"이라는 내용이었다. 범인이 작성한 스레드와 그와 관련된 2ch 스레드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당시 다른 2ch 유저들은 범인을 향해 '낚시하지 마라', '할 용기도 없으면서', '어디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자극했다.[* 훗날 2015년 미국에서 일어난 [[움프콰 칼리지 총기 난사 사건]]에서도 범인이 [[4chan]]에 예고글을 올리자 게시판 스레드에 있던 다른 이들 역시 이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2010년 1월 8일에 1심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 과정이 길고 긴 걸로 유명한 일본 법정의 관례로 봐선 이 사건의 재판도 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례적으로 5년 만에 끝났다. 범인은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2011년 3월 24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10324240900073|#]] 범인이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으로 미뤄 보아 항소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항소해서 2심 재판이 이어졌다. 국선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당연히 인정되지 않았고, 2012년 9월 12일 도쿄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죄질이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그대로 사형 판결을 유지했다. 동년 9월 25일 변호인이 상고했으나 2015년 2월 2일 최고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면서 3심까지 간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만에 사형이 확정됐다. [[https://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21640461&code=970100|#]] 사실 이보다 피살자가 더 적은 사건의 경우라도 사형이 쉽게 내려지는 판이니 예상된 결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사법부는 [[정상참작]]의 사유가 없으면서 2명 이상을 살해한 자는 예외 없이 사형 판결을 내려 왔다. 또 범인의 죄목인 [[대량살인]]이 워낙 흉악하며 범인이 자신의 죄만 인정하지 반성하지도 않는 흉악범이라서 그가 사형을 선고받은 것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나가야마 기준]]) 결국 범인 카토 토모히로는 [[구치소]]에 수감되었고 수감된 지 14년 만인 2022년 7월 26일 오전 사형이 집행되어 향년 39세로 사망했다. 워낙 죄가 흉악한 터라 그가 사형에 처해졌을 때 일본에서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KhE4PeN40U)]}}}|| || [[후루카와 요시히사]] [[일본 법무성|법무대신]]의 카토 토모히로 사형 집행 후 발표 ([[마이니치 신문]])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wToZooOOsbk)]}}}|| || 사형 집행 관련 뉴스 ([[니혼 테레비]])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